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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여행기

뉴질랜드 오클랜드 여행 도중 스마트폰, 카메라 박살났다

아침 8시 즈음 일어나서 지난밤에 장본 재료로 섞어서 베이컨 샌드위치를 만들고 우유와 함께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주변에 걷기 좋은 곳을 검색했다. 해변가를 걸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소화도 시킬겸 사뿐하게 걸었다. 

 

오늘은 구름이 많다. 예보를 보니 오후 쯤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이따가 폭포를 보러 가야하는데 비가 오면 위험할 것 같았다. 걸으면서 루트를 바꿀까 말까 고민을 했다. 원래 계획은 카이아테 폭포를 구경하고 타우랑가로 이동해서 마웅가누이 산을 등산하는 루트다. 고민을 하다가 둘 다 보고 가자! 결정했다. 

 

아직 잠자고 있는 오리들. 부리를 날개 사이에 폭 넣고 자는 모습이 귀엽고 신비롭다. 왜 저런 자세로 자게 되었을까?

로토루아에서 카이아테 폭포까지는 차로 약 1시간 조금 넘게 걸린 것 같다. 중간에 좋은 풍경이 있으면 멈춰서 보고 이동을 해서 오래 걸렸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디서 어느 풍경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동할 때 시간을 넉넉하게 여유를 주는게 좋다.

 

카이아테 폭포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린다. 가면서 비를 멈춰달라 빌었지만 나의 요청을 들어주시지 않았다. 아쉽다. 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챙기고,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작은 가방에 넣었다. 비가 오는 상황이라 땅이 질척거리고 돌들이 미끄러웠다. 최대한 조심조심해서 내려갔다. 

 

조심조심 내려오니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폭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이동을 하려던 찰나 나에게 아주 큰 시련이 찾아왔다. 돌이 미끄러운데 물까지 흐르고 있어서 균형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고꾸라져 다 젖어버렸다. 오른손엔 우산을, 왼손엔 카메라를, 가방엔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내 머릿 속에는 단 한 문장만 떠올랐다. 멘탈이 나간 나에게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와서 타올을 건네주셨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내 몸보다 기계들에 묻은 물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화면을 켜보니 다행히 깨진 곳은 없다. 하지만 꺼졌다 켜졌다가 반복되면서 망가져버린 것이다. 이미 여기서 멘탈이 나가버렸고 그 다음으로 카메라 전원을 눌렀다. 넘어질 때 충격으로 아예 켜지지도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동안 찍은 내 사진들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는 메모리카드라도 살려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얼른 밧데리와 메모리카드를 꺼냈다. 카메라도 익사했다.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올라가면서도 혼잣말로 그 한문장을 내뱉으면서 빠르게 올라갔다. 차에 들어가서 일단 옷을 갈아입었다. 핸들을 잡고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질문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네비게이션, 일정, 숙소 예약 등 모든 걸 했는데 그게 없어지니 진짜 막막했다. 당장 다음 이동지로 이동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몰라서 막막했다. 

 

그러고보니 주차장에 비를 맞으면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두 남성이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기 위해 다가갔다.

나 : "실례하겠습니다. 내 스마트폰이 박살나서 그러는데 혹시 종이 지도를 갖고 있나요?"

외국인 : "아뇨 종이 지도는 없어요"

나: "아.. 내가 타우랑가로 가려고 하는데 스마트폰 한번만 빌릴 수 있을까요?"

외국인 : "아 오케이 잠시만요"

 

구글맵을 켜서 도착지로 타우랑가로 설정해서 나에게 빌려줬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로명들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다 적은 후에 다시 돌려주면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적은 것들을 보니 더 막막했다. 내가 있는 곳이 대도로였다면 찾기가 훨씬 수월했겠지만 굽이굽이 들어온 이 곳에서 다시 빠져나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이 나라는 땅도 넓고 도로도 쭉 직선이라 길을 잘못 들어서는 순간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멘탈을 잡기 위해 15분 정도 심호흡하면서 어떻게 이상황을 해결해야할 지 시나리오들을 생각해봤다. 시내로 들어가면 스마트폰을 살지 말지부터 다양한 플랜들을 생각해봤다. 어느정도 멘탈을 부여잡은 후 무작정 출발했다. 양갈래 길이 나온 순간 멘탈이 흔들렸고 거기서 비상등을 키고 지나가는 차가 오길 기다렸다. 하필 내가 있는 곳은 외진 곳이라 차들도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자동차 한대가 다가왔고 손을 크게 휘둘렀다. 차가 멈추고 나는 다가가서 내 상황을 설명했다. 

 

나: "내가 지금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 타우랑가로 가려고 해요. 어떻게 가야하는지 가르쳐줄 수 있어요?"

외국인 : "엄.. 알겠어요 내 차 따라서 와요 가는 길을 가르쳐줄게요"

나 : "네 고마워요!"

 

그렇게 20여분 차를 따라가니 대도로가 나오고 주유소가 나왔다. 거기서 우리는 멈췄다. 그 외국인이 이 도로를 쭉 따라가면 타우랑가가 나오고 그 전까지 이정표가 있으니까 갈 수 있을꺼다 말을 해줬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 외국인은 살짝 놀라면서 "내 와이프도 한국인이야" 라고 말하는거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때 상황에서는 물어볼 경황이 없어서 놀란 리액션만 하고 헤어졌다. 그 아저씨는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은인이다. 

 

그렇게 나는 지도도 없이, 스마트폰도 없이, 사진기도 없이 남은 여행을 시작했다.